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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RAL CONDITIONS

2026. 3. 5 - 4. 23

김근태, 김택상, 김현식, 김홍주, 박종규, 신미경, 이진우, 이형구, 정수진, 제여란, 최명영, 함명수, 황창배,
Ad Minoliti, Aya Takano, Gina Beavers, Philip Colbert, Simon Fujiwara, Ugo Rondinone


전시 개요 (Curatorial Statement)


《Plural Conditions》는 동시대 미술이 성립하는 복수의 조건들을 하나의 공간에 병치하는 전시이다. 본 전시는 공통된 주제나 미학적 방향으로 작품을 통합하기보다,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물질적 조건, 이미지 환경 속에서 형성된 작업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상태 자체에 주목한다. 여기서 ‘조건’이란 형식의 차이를 넘어, 작품이 생성되고 인식되는 방식,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를 포괄한다.


전시는 먼저 회화의 물질성과 행위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접근을 드러낸다. 최명영은 반복적 행위를 통해 평면의 존재 조건을 탐구해 왔으며, 이진우는 한지와 숯의 축적과 압착을 통해 시간의 밀도를 화면에 각인한다. 김택상은 빛과 물의 감각을 회화적 사건으로 조직하고, 김현식은 레진의 중첩과 제거를 통해 화면 내부의 심연을 확장한다. 김근태는 색과 구조가 형성하는 긴장 관계를 통해 추상 회화의 감각적 질서를 구축하며, 황창배의 작업은 전통 회화의 관습을 해체하는 급진적 필치로 회화 언어가 놓인 조건 자체를 흔든다.


여기에 김홍주는 평면 회화의 구조와 색채의 자율성을 밀도 있게 탐구하며, 반복과 변주의 축적을 통해 화면의 질서를 구축한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형식적 실험을 넘어 회화가 성립하는 조건, 즉 행위와 시간, 물질의 관계를 치밀하게 드러낸다. 함명수는 회화적 제스처와 물감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감각적 에너지와 화면의 긴장을 전면화한다. 축적과 번짐, 흔적의 중첩은 회화를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하게 한다.


동시에 전시는 이미지와 신체, 시각문화의 조건을 탐색하는 작업들을 병치한다. 신미경은 비누라는 덧없는 물질을 통해 역사와 권위, 보존의 문제를 가시화하고, 이형구는 해부학적 연구와 상상력을 결합해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교란한다. 박종규는 디지털 환경에서 발생하는 노이즈와 오류를 조형 언어로 전환하며, 정수진은 색과 형상의 비서사적 배열을 통해 인식의 작동 방식을 회화적으로 탐색한다. 제여란은 신체적 감각과 내적 리듬을 화면에 축적하며, 회화를 감각의 기록으로 확장한다.


해외 작가들의 작업은 동시대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존재 조건을 또 다른 층위에서 드러낸다. Ad Minoliti는 기하학과 비규범적 정체성을 결합해 회화의 규칙을 재구성하고, Aya Takano는 만화적 형상과 우주적 상상력을 통해 공존의 서사를 펼친다. Gina Beavers는 SNS 이미지의 문법을 두터운 물질성으로 번역하며 욕망과 자기 재현의 표면을 드러낸다. Simon Fujiwara는 개인적 서사와 집단적 기억을 교차시키며 동시대 주체의 형성 조건을 탐문하고, Philip Colbert는 대중문화의 캐릭터를 통해 고급미술과 이미지 소비 체계의 경계를 드러낸다. Ugo Rondinone은 반복과 리듬, 자연과 정서의 구조를 통해 인간 존재가 놓인 시간적·정서적 조건을 시적으로 가시화한다.


《Plural Conditions》는 차이를 조율하거나 하나의 기준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다른 조건들이 동시에 성립하는 장을 구성함으로써, 동시대 미술이 어떤 환경과 태도 속에서 가능해지는지를 질문한다. 관람자는 작품 사이를 이동하며 각기 다른 조건에 반응하고, 그 과정에서 감각과 해석의 좌표를 지속적으로 갱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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